슈필 인스티튜트 공간 이용에 대한 소고 (2)
4.
요즘 슈필 인스티튜트에는 보드게임이라는 즐거움에 푹 빠져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분들은 한 번 모임에 참석하면 5~6시간은 기본이고, 심지어 밤을 새워 아침까지 게임을 즐기다 귀가하시곤 하지요. 이해합니다. 저도 그랬으니까요.
하지만 우리는 모두 육체를 가진 인간입니다. 정신이 육체를 지배하는 순간에는 피로를 잊고 몰입하지만, 결국 육체는 밤샘에 대한 대가를 후불제로 청구합니다. (얼마 전 장X목X님은 금요일 밤샘의 여파를 토요일과 일요일 내내 회복하지 못했다고 하지요.)
이렇게 육체를 소진하는 방식의 취미 생활은 오래 지속되기 어렵습니다. 결국 어느 순간 육체와 취미 사이의 균형점을 찾아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대부분은 육체보다 보드게임을 내려놓게 됩니다.
보드게임은 한두 해 미쳐 있다가 치워버릴 만큼 얄팍한 유희가 아닙니다. 제가 20여 년 동안 이 취미를 즐겨본 결과, 분명 오래도록 향유할 가치가 있는 훌륭한 문화라는 점은 확실합니다. 그렇다면 좀 더 오랫동안 이 취미를 지속할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요.
5.
제가 찾은 방법은 “이벤트가 아닌 일상”으로서의 보드게임입니다. 정갈한 마음으로 목욕재계하고 경건하게 준비하는 이벤트도 물론 훌륭하지만, 언제나 그런 태도로 살아간다면 금방 지치고 소진되고 말 겁니다. 연애 초기의 두근거림을 결혼 10년 차에도 그대로 유지하며 살려고 하면 심장에 무리가 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잘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 어렵게 짬을 내어 만든 소중한 시간이라는 것을요. 1분 1초가 아쉬워서, 잠은 죽어서나 자자는 심정으로 한 게임이라도 더 하고 싶어 달려드는 그 마음을 누구보다 잘 이해합니다.
하지만 이벤트는 이벤트일 때 가장 빛나는 법입니다. 이벤트가 일상이 될 수는 없어요. 다행히 보드게임은 충분히 일상 속으로 들여올 수 있는 취미입니다.
퇴근길에 잠시 들러 1~2시간짜리 게임 한 판을 가볍게 즐기고 귀가하는 것, 오며 가며 카페에서 커피 한 잔 마시듯 일상 속에서 보드게임의 매력을 맛보는 것. 이 정도라면 우리의 삶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는 충분한 시간과 낭만이 아닐까요?
6.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어, 슈필 인스티튜트는 개장 이래 지금까지 시간제로 운영한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일일 이용 요금제를 적용하다 보니, 시간당 비용을 계산하며 최대한 오래 머물러야 이익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히기 쉽습니다. 매일 1~2시간만 이용하고 일일 이용권을 내는 것이 몹시 아깝게 느껴질 수 있기에, 평일 저녁 시간 요금제를 만든 것도 바로 그런 분들을 위한 배려였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모두가 시간당 비용을 효율로 환산하는 덕분에, 평일 참가자들마저 자정을 넘겨야 모임을 끝내는 경우가 비일비재했습니다. 덕분에 슈필 인스티튜트를 빠져나갈 때 여러분의 모습은 퀭한 눈의 좀비 그 자체였지요.
뭔가 아이러니하더군요.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편하게 이용하길 바라며 만든 요금제가, 오히려 평일에 일상처럼 가볍게 이용하지 못하고 체력을 깎아먹는 방식으로 공간을 소비하게 만들고 있으니 말입니다.
정녕 빈의 카페처럼 자유롭게 드나들며 일상을 공유하고 즐거움을 만들어내는 공간을 만드는 일은 어려운 일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