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필 인스티튜트 공간 이용에 대한 소고 (1)
1.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이르는 기간 동안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은 ‘카페하우스(Kaffeehaus) 문화’로 유럽 지성사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빈의 커피하우스는 단순한 음식점이 아니라 사실상의 공공 서재이자 사교 공간이었습니다. 커피 한 잔을 시키면 몇 시간이고 머물러도 종업원이 눈치를 주지 않는 것이 관례였고, 신문과 잡지를 자유롭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이런 분위기 덕분에 아르투어 슈니츨러, 후고 폰 호프만슈탈 등 작가들이 카페 그린슈타이들(Café Griensteidl)과 카페 첸트랄(Café Central)에 모여 새로운 문학 경향을 논의했으며, 이들을 청년 빈파(Jung Wien)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카페 첸트랄은 특히 상징적인데, 트로츠키가 빈 망명 시절 이곳에서 체스를 두며 시간을 보냈다는 일화가 유명합니다(오스트리아 외무장관이 "트로츠키가 혁명을 일으킨다고? 그는 카페 첸트랄에 앉아 있는데?"라고 반문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2.
오래전 빈을 방문했을 때, 카페 첸트랄로 기억하는 한 오래된 카페에 들렀습니다. 앞서 언급한 배경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방문했기 때문에 소회가 남달랐습니다. 오래된 테이블, 의자, 소파 등이 놓인 고즈넉한 공간이 당대의 지성인, 예술인, 사상가들이 모여 밤낮없이 담소를 나누던 장소였다는 생각을 하니 가슴 한구석이 뜨거워지더군요. 타임머신을 타고 100여 년 전으로 돌아가 그들과 같은 장소에서 대화를 나누고 싶은 충동이 일었습니다.
당대의 빈은 사상적 다양성의 용광로 역할을 했으며, 그 중심에 카페가 있었습니다. 회전율에 목숨을 걸며 커피를 다 마시면 빨리 나가라는 눈치를 주는, 사실상 ‘카페인 주유소’가 되어버린 한국의 카페에선 그런 문화적 용광로를 기대할 수 없다는 사실에 안타까움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빈의 카페처럼 사람들이 편안하게 모여들어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3.
그로부터 한참 시간이 흘러 2026년. 슈필 인스티튜트는 개장 1주년을 맞이했고, 모임 구성원은 어느덧 200명을 헤아리는 때가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이 공간을 진심으로 아껴주신 여러분의 애정 덕분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문득 오래전 빈에서 느꼈던 소회가 떠오르더군요. 마침 저에게는 슈필 인스티튜트라는 작은 공간이 있네요.
‘그럼 이 공간을 또 하나의 카페 첸트랄로 만들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