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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 가능한 취미생활에 필요한 불문율

슈필인스티튜트 보드게임연구소장·2026년 6월 16일

0. 들어가는 글

보드게임을 취미생활로 삼은지 벌써 사반세기가 흘렀네요. 본래 뭔가를 하면 진지하게 파고드는 성격이긴 해도 이 정도 시간을 들여서 심취하는 건 개인적으로도 그리 흔한 일은 아니네요.

보드게임은 사람을 이어주는 매개체라고 보는 시각도 있는 만큼, 그 시간의 무게만큼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 중에는 수십년이 넘도록 계속 이어지는 인연도 있고,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물론 시간과 공간의 제약 때문에 자주 보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지만, 플레이 스타일 상 저와 상성이 맞지 않다는 이유로 살짝 거리를 두게 되는 경우도 있었네요.

10명의 플레이어가 있으면, 10가지 색이 존재할 정도로, 플레이 스타일은 모두 제각각입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는 그런 개성들이 멋지게 조화를 이루면서 좋은 플레이 경험으로 남습니다. 하지만, 일부의 경우, 불협화음을 낼 때도 있고, 더 나아가 불편함을 주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반복되면, 서서히 거리를 두게 되지요.

개인의 경우에는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좋아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을 선별해서 만나면 되니까요. 하지만, 모임을 주관하는 입장에서는 조금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자칫하면 구성원들 사이에서 알력이 생겨서, 비공개 폐쇄모임으로 전환되거나, 모임 전체가 와해되기도 하니까요.

본디 저는 취미생활에 있어서는 조금 느슨한 규칙을 좋아합니다. 현실의 삶이 너무 엄격해서 도피처로 삼는 취미생활인데, 거기서조차 엄격한 규칙을 강요받는다면 너무 답답하잖아요. 하지만, 최근 슈필인스티튜트에서 몇 가지 이상기류가 감지되는 바, 함께 유쾌하고, 지속 가능한 유희를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어느정도 규칙이 필요하다는 걸 인정할 수 밖에 없겠네요.

다음의 사례들로 이야기를 이어나가봅시다.

1. 트롤링

보드게임을 비롯해서, 경쟁을 근간으로 하고 있는 모든 종목들은, 참가자가 모두 승리를 향해 정당하게 노력하는 것을 전제로 규칙을 수립합니다. 비록 승리의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해도 게임 내의 모든 행위가 승리를 향하고 있어야 합니다.

중급 전략게임 들이 대부분 2시간 안팎의 플레이 타임을 보이니까, 마라톤의 진행시간과 얼추 비슷할 겁니다. 수십 수백명의 마라토너 가운데 우승의 희열을 맛볼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 뿐입니다. 그런데, 어떤 마라토너가 자신이 우승할 가능성이 희박해졌다고 해서, 다른 마라토너의 다리를 걸거나, 어깨로 밀치는 행위를 하면 어떨까요? 당연히 용납되지 않을 것입니다.

보드게임도 마찬가지입니다. 승패를 떠나, 참가자 모두에게 소중한 시간이고 경험입니다. 마땅히 존중받아야 하고요. 하지만, 게임 도중 게임의 목적을 바꿔버리는, 그것도 다른 참가자를 훼방하는 방향으로 게임을 진행하는 참가자가 있다면 어떨까요?

승패와 상관없이 최선을 다하는 것은, 소중한 시간을 내서 함께 해주는 다른 참가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일 것입니다.

2. 승부욕

승부욕에 대해서도 생각해봅시다. 보드게임도 게임의 일종이니까, 적당한 승부욕은 필요합니다. 당연히 승부욕이 너무 없는 사람과의 게임은 생각만으로도 지루합니다. 하지만 승부욕이 지나친 것 또한 문제를 야기합니다.

게임 내에서 허용하는 범위의 견제에도 지나치게 격앙된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니, 그걸 넘어서, 복수심에 불타는 사람도 만나봤군요. 탁구공을 던졌더니, 볼링공으로 응수하는 사람도 봤습니다. 심지어 게임이 끝났는데도 그 감정을 거두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네요. 모두 지나친 승부욕이 낳은 부작용이라 생각합니다.

이런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게임은 피로감을 부릅니다. 당연히 유쾌하지 못한 경험으로 남겠지요. 적절하게 승부욕을 조절하는 것도 이 취미생활을 오래 지속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덕목입니다.

과유불급. 잊지 맙시다.

3. 불편선

앞선 이야기의 연장선에 있는 내용입니다. 게임 도중 참가자 사이에 적절하게 주고받는 티키타카는 게임의 즐거움을 배가시켜주는 청량제입니다. 저 역시 게임 외적으로 유쾌한 농담을 주고받으며 게임하는 것을 즐깁니다. 그런데, 즐거움이 불편함으로 바뀌는 선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 불편선은 개인차가 있습니다. 당연히 절대적 기준이 존재할 리 없지요. 그래서 우리는 개인별 캘리브레이션 과정을 거치곤 합니다. 이 정도 선까지는 허용한다는 걸 조율하며 맞추는 과정이지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불편선을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합니다. 하지만, 그 방법이 “다양”하다는 게 문제네요. 감각이 예민한 사람들은 즉각 알아차리겠지만, 저처럼 좀 둔한 사람들은 못 알아차리기도 합니다.

분명 시그널을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불편선을 자꾸 넘나드는 사람이 있다면, 자연스럽게 거리를 두게 되겠지요.

일사 샌드의 표현대로라면, 신의 축복인 “예민한 감각”을 가진 사람들이 주변에서 좀 도와주면 좋겠네요. 그리고 그렇게 도와주는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는 것도 잊지 맙시다. 당신이 모임에서 배제되는 것을 막아준 것일테니까요.

4. 악평

보드게임의 세계를 처음 “제대로” 맛본 분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하는 말이 있습니다.

“이렇게 방대한 세계가 있는 줄 몰랐다.”

삼라만상이 모두 보드게임의 소재이고, 이를 구현하는 형태의 진입장벽이 매우 낮다보니,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긴 이력을 가진 것이 보드게임이지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작품 가운데는 당연히 명작도 존재하고 졸작도 존재합니다. 문제는 이것이 개인 편차가 존재한다는 점에서 비롯됩니다. 아니, 개인간 편차 뿐만 아니라, 시간과 경험에 따른 편차까지 존재하네요.

어떤 게임은 누군가에게는 명작이고, 누군가에게는 졸작이라는 상반된 평가가 가능합니다. 어떨 때는 황홀한 플레이 경험을 주기도 하지만, 반대로 떨떠듬한 경험을 주기도 하기 때문에, 동일 인물이 한 게임에도 시간과 상황에 따라 상반된 평가를 내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경험이 개인에게 좋지 못했다고 해서 X겜, 망겜 등 혐오발언을 쏟아내는 사람이 있다면, 정작 그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은 어떤 기분이 들까요? 짧은 촌평만으로도 충분히 기분이 나쁠 수 있는데, 지속적으로 해당 게임을 폄훼하고, 그 게임을 즐기는 사람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도 점차 그 사람과 거리를 두게 될 것입니다.

악평을 남길 때는 조금 더 신중해주세요. 타인, 아니 미래의 나 자신에게 부끄러운 기억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5. 정리하는 글

장황한 글을 적었지만 요약하면, 상호 존중과 배려라고 할 수 있겠네요. 나와 함께 하며 소중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테이블 너머의 상대방에 대해 항상 고마운 마음을 갖는다면, 그 마음은 꼭 전해질 겁니다. 그런 사람이라면 어디에서도 환영받을 플레이 파트너가 되겠지요.

고백하자면, 저도 저런 트롤러였습니다. 분명 악의는 없었다고 자신할 수 있지만, 여러모로 눈치 없고, 서툴렀던 어린 시절에 함께 했던 많은 이들에게 불편함을 안겼을 겁니다. 그래도 이렇게 긴 시간 취미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준 주변 사람들에게 항상 감사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이 모임을 가급적 오래 지속하고 싶은 마음은 슈필인스티튜트에 오시는 모든 분들에게 하나같을 겁니다. 그렇다면, 트롤링을 부디 눈감지 마시고, 귀뜸해주세요. 당사자가 눈치채지 못하거나, 직접 표현하기 어렵다면 저에게 말씀해주세요. 여기 오시는 분들 가운데 악의적인 트롤러는 없을거라 믿습니다. (만약 있다면 강력하게 대처하겠습니다.) 저처럼 눈치없는 둔탱이일 가능성이 높겠지요. 제가 그랬듯이 개과천선의 가능성이 있을 겁니다. 함께 모색해봐야지요.

게임에서 불편했던 경험이 있다면 가감없이 말씀해주세요. (예: 연구소장이 너무 잘생겨서 게임에 집중할 수 없었어요.) 열린 마음으로 경청하겠습니다.

1주년이 아니라 2주년, 아니 10주년에도 모두 한 자리에서 유쾌하게 이 취미생활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기를 바라며, 장광설을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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